요13:34-35
당시 세계 군사적으로 최강국이었던 로마는 이러한 전염병에 무력했습니다. 제국과 그곳의 종교는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로마의 종교는 이것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염병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로마의 종교를 보면서 무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달랐습니다. 먼저 신앙의 관점으로 이 전염병을 바라보고 신앙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은 급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죽음에 기독교인은 천국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전혀 답이 없는 사회에 하나의 답이 된거죠. 키프리안이라는 주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비록 의인과 불의한 자가 함께 죽어가고 있지만 믿지 않는 불의한 자들과 의로운 자들의 최후가 같지 않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는 위로의 손길을 통해 영생을 얻지만 불의한 자는 고통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답없는 당시 로마시대에 기독교는 희망을 던져준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을 제공하는 기독교는 다른 로마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실제 기독교인 전염병 사망률 감소와 연결이 됩니다. 260년 전염병 때 “디오니시우스”의 편지에서 발견된 글입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아픈 자를 도맡아 그리스도 안에서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기쁨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들은 환자로부터 병이 옮자 그 아픔을 자신에게 끌어와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다른 사람을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반면 “로마 사람들은 정반대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처음 질병이 발생하자 아픈 자를 내쫓았고 먼저 도망쳤으며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버려서 매장하지 않은 시신이 거리에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전염병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럴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리하자면, 로마시대 두차례의 강력한 전염병은 로마 종교가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고 약해지게됩니다. 반면, 같은 상황속에서도 천국과 영생의 소망이 있는 기독교인들은 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에 최선을 다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간호와 섬김이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되었다. 사망률을 낮추고 눈이보이는 기적이 되었으며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돌아봅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독감에 두려워하는 우리들은 다시한번 우리 기독교 교리적 가치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죽음 이후의 천국의 소망을 가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있게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나아가야합니다. 우리는 항상 전염병 같은 위기 속에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나만의 안전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삶의 방식을 택해야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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